'인도찍먹기'
△사진출처: naveed-ahmed
짧은 기간이지만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중국, 베트남을 이어 그다음이라 불리는 인도가 우리에게 주는 기회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었고, 책으로 보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일정이 허락하여 뭄바이까지 같이 봤으면 좋겠지만, 일단 뉴델리에서 일정을 대부분 보냈습니다. 머무는 기간 동안 매일 현지 기업과의 미팅, 현지 마켓이나 몰과 같은 시장 조사로 일정을 꽉 채웠습니다. 마지막 날 미팅 한 건이 취소되어 오래된 사원을 둘러본 것을 제외하곤 그야말로 비즈니스에 집중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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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보니 한국의 80년대를 보는 느낌입니다. 아직 시스템은 정비되어 있지 않고 규범은 느슨합니다.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 교통이었는데, 우버를 이용하는 시간은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엔 인도는 아직 멀었다는 속단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신뢰가 부족한 바이어와 불확실성이 가득한 환경이 너무나 위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쉽게 속단하고 그 생각을 빨리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 그러나 이러한 발전의 격차는 사실상 기회의 장이었습니다. 적용할 비즈니스는 차고 넘쳤으며 아직 시작되지 않은 비즈니스가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 유니콘이 된 Zomato는 우리나라 배달의민족과 동일한 서비스입니다. 붉은 배달 상자에 붉은 재킷을 입어 멀리서도 눈에 확연히 들어옵니다. 과거 일본이 근미래의 한국이라고 불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붐을 일으키는 것을 한국에 빨리 적용하면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러합니다. 한국의 유망한 서비스를 인도에서 적용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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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꽌시’처럼 인도 비즈니스에도 뒷돈이 존재합니다. 그 규모를 잘못 산정하면 세무조사에 걸리기도 합니다. 군인이나 경찰에게 약간의 현금이면 순식간에 모든 제재가 느슨해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부분은 개선되겠지만, 어느 나라든 이러한 시기를 거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기라는 기간이 있지만 수도에 상수도 시설이 없는 것은 큰 문제로 보였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벌어졌지만, 중하위층을 위한 정책은 쉽게 보기 힘듭니다. 이는 정치적 미성숙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계가 어려워 그들은 아직 정치에서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길거리 곳곳에 정치인 포스터가 넘치는 것을 보니 정치는 중요한 이슈이긴 한 것 같은데, 아직은 기득권을 위한 다소 편향된 정치판이진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높은 벽과 경호 시설로 군부대 크기에 육박하는 개인 주택은 그래서 더 큰 인상을 줍니다. 그렇다고 구성원들이 수준이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인지도를 가진 기업에 상당수의 인도인이 있습니다. 사회가 아직 개인을 못 쫓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격차가 제겐 곧 기회로 보였습니다. 14억 인구의 내수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출처: the-hk-photo-company-t72WgCWLZpQ
첫 미팅은 결혼 관련 업체였습니다. 인도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행사입니다. 꽤 많은 자본을 쏟아부어 치르는 행사입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한국은 결혼을 보다 간결하고 소박하게 하는 추세입니다. 결혼식에 드는 비용을 아껴서 차라리 자금을 모으거나 다른 곳에 돈을 쓰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인도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어차피 한 번 하는 결혼이니 더 성대하게 하자는 인식이 늘어났습니다. 대신 참석자 수는 줄되, 결혼식 참석 인원이 단체로 두바이와 같은 해외로 이동하여 진행하는 결혼식이 성행한다고 합니다. 결혼식이 호화 여행과 결합된 형태입니다. 같은 현상인데 국가별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사진출처: freepik
과거 교과서를 통해 우리는 인도의 계급 제도를 압니다. 제가 본 인도에선 그 계급보다 경제적 계급이 더 강력한 구분으로 보였습니다. 소비력에 따라 마켓이나 몰이 따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주 타겟층은 보통 중상위층부터 시작되는데 상류층의 몰에서는 일부 품목이 한국보다 비싼 점이 인상적입니다. 소비 계층에 따라 몰 내부의 인테리어도 차이가 납니다. 디스플레이 자체는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제품의 진열이나 매장 내부 구성에 정성을 기울인 정도는 확연히 보입니다. 골목거리처럼 구성된 마켓은 복합쇼핑몰보다는 더 예쁩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내며 구성된 일부 매장은 제가 봐도 좋아 보인 곳이 더러 있었습니다. 아직 고객 동선이나 시선 이동은 부족한 면이 보이긴 했는데, 제가 아직 인도 현지 고객의 행동 패턴을 모르니 정확한 판단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진출처: israel-andrade
스타트업 육성 공간과 실제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내수 시장이 거대하다는 것은 이곳 스타트업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부러움이 생겼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나본 스타트업들은 비즈니스 모델이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꽤 부족해 보이는 모델임에도 투자 제의를 받았으나 기업 가치를 더 높여서 후속 투자를 노린다는 말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인도 시장이 가지는 가치가 크니 해외 펀드도 꽤 많아 보였습니다. 약간의 허상이 보였는데, 시장 매력도가 크니 현지 창업자에 대한 투자는 적극적입니다. 반면 창업자는 사업에 대한 성장보다는 빠른 투자 프로세스를 통해 엑시트를 통한 부 획득을 꿈꾸는 뉘앙스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제가 만난 건 일부 스타트업이니 한정된 시각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업 가치 상승을 위한 체계적인 멘토링에 대한 필요를 확인한 셈입니다.
△사진출처:rodion-kutsaiev
개인적인 관심은 소비자의 심리였습니다. 인도는 이제 중산층 개인 소득이 100만 원 내외의 수준에 도달했고 맞벌이의 경우 200만 원을 상회하는 소비 수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하며, 시장의 변화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의 소비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는 제게 너무 큰 관심입니다. 이러한 제 욕망을 읽고 현지에서 마케팅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를 긴급 섭외해주셨습니다. 서로 일정이 안 맞아 간단히 티타임을 하기로 한 것이 2시간 반이나 넘게 이야기했습니다. 듣자 하니 인도는 이제 막 온라인 채널로의 디지털 전환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2018년 미디어 커머스에서 연출된 콘텐츠가 흥행하고 그 이후엔 Before&After 영상이나 (효과가 전혀 적용되지 않은) 실제 실험 영상이 유행하였습니다. 고객은 이전 연출 콘텐츠의 과다 체험으로 허위 사실에 질린 것이었습니다. 인도는 한국이 겪은 앞부분의 연출 미디어 과정이 생략되고 실제 영상이 중요한 트렌드가 컸습니다. 선진 기술이 시장에서 스킵 현상이 발생하는 셈인데, 이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데이터 마케팅이 벌써 의사결정에 관여를 시작하고, 특정 지표 중심의 퍼포먼스 마케팅 과정은 스킵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출처:nasa
만약 제가 싱글이었다면 종자돈을 들고 인도로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 정도 고생해보고 그다음을 결정해도 좋을 겁니다. 실제로 Y대 출신의 대학생이 인도에서 한국식 치킨으로 큰 성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체제와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새로운 틈이 존재하기 힘듭니다. 한국에서 간혹 창업이 답답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고객의 취향이 날이 갈수록 뾰족해지니 우리는 고객을 국내로 한정지어선 안 됩니다. 소비자의 정보탐색 능력도 점점 더 우수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스타트업은 시작부터 글로벌이어야 합니다.
백 진 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경북청년창업사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