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리그는 없고 4개 팀이 운영하는 소규모 리그가 하나 있다고 했다. 클랜의 규모가 45명 정도인데 절반이나 모인 결과이다.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이 클랜엔 왠지 나만 중년일까 우려했지만,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세 분이나 계셨다. 한 분은 아드님이 프로게이머이기도 했다.
“이 게임 해보신 적은 있으세요?”
“네, 예전에 해본 경험은 있지만 잘하진 못합니다.”
“배치부터 보세요. 실력에 따라 팀이 편성될 거에요. 조 지명식은 2주 후에 있어요. 우리 클랜은 매너를 중요시해요. 욕설이나 비방은 삼가시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는 하지 마세요.”
그냥저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내는 곳이라 여겼는데, 조직의 틀이 꽤 촘촘하다. 시즌에 따라 최소 접속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이중으로 다른 클랜과 겸업(?)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존댓말이 기본인데 친한 사이는 말을 놓을 수도 있고, 문제 발생의 소지가 있는 오프라인 모임은 일절 금지한다. 나이는 만 30세 이상만 가입이 가능하고, 클랜 전체의 클래스 균형을 위해 개인별 주력 클래스를 따로 정해둔다. 단체 카톡방도 오픈채팅방이라 개인별로 연결이 쉽게 될 수 없도록 하였다. 파벌 문화를 견제하는 모양이었다.
△사진출처: Bing Image Creator AI
오버워치2는 하이퍼 FPS게임이다. FPS란 “First Person Shooter”의 약자로 플레이어 시점, 즉 1인층 시점에서 진행하는 총기류 게임이다. 여기에 하이퍼가 붙은 이유는 기존의 총기류 게임과는 다른 세계관이 반영되어, 인간 외 캐릭터나 무기류가 특별한 캐릭터들이 있다. 여기에 롤플레잉 게임의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탱커, 딜러, 힐러라는 클래스가 분류되어 있고, 각 클래스별 역할이 다르다. 5명이 한 팀으로, 탱커 1명, 딜러 2명, 힐러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탱커는 방어력을, 딜러는 공격력을, 힐러는 치료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각 클래스별로 캐릭터가 여럿 존재하며, 각 캐릭터는 서로 상성을 가진다.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맞물리는 상성 탓에 상대 조합에 따라 팀의 구성을 다르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조 지명식이 시작되었다. 의사소통은 주로 디스코드로 이루어진다. 진행자를 맡은 클랜장이 화면을 공유한다. 참가하는 선수에 따라 점수가 부여되어 있다. 힐러 포지션에 있는 여성 유저 4명을 임시 팀장으로 선정하고, 팀의 합계 점수가 낮은 팀부터 다음 선수 지목에 우선권이 있다. 단, 생태계를 교란할 정도로 강력한 참가인원이 2명 있는데 이들은 가장 나중에 선택할 수 있다. 임시 팀장이 지목을 하면 참가자는 1회에 한하여 거부권을 쓸 수 있다. 거부권을 쓰면 그 팀장의 권유가 거절되므로 다음 팀장이 그 선수를 데려갈 수 있다. 나름 교육에 많은 게이미피케이션을 했다 자부했지만, 이토록 치밀한 구성은 정말 놀라웠다. 경우의 수가 많다. 각 선수를 선택할 때마다 팀별로 합계 점수가 실시간으로 정산되고, 각 팀장 간의 현란한 두뇌 싸움이 치열하다. 생태계 교란자 선택을 위해 최저점을 계속 유지하던 한 팀장이 거부권을 당하면서 처절하게 무너졌다. 대신 관전하는 많은 이들에겐 큰 웃음을 줬다.
이 게임의 흥미로운 점은 FPS라서 무조건 달려가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턴이 있는 바둑에 가까웠다. 매 전투마다 각 캐릭터의 포지션마다 우위가 나뉘고, 궁극기에 따라 불리한 싸움을 이길 수도 있다. 상대의 궁극기를 예상하여, 상대 궁극기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있으면 그걸 다시 뒤집을 수도 있다. 탱커는 든든한 방어력으로 무조건 맞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킬 타이밍에 맞춰 조금씩 공간을 차지한다. 차지한 공간을 기반으로 딜러는 공격할 수 있는 각이 열리고, 전투가 우세해진다. 상대의 공세에 따라 아군의 진형도 바꿀 줄 알아야 하며, 맵별 특성에 따라 유리한 고지를 누가 점령하는가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상대 조합과의 상성에 맞춰 아군 조합도 바꿀 수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클래스 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가 높을수록 유리한 것이 된다.
여기서 나의 약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정된 캐릭터 사용과 낮은 숙련도. 상대 팀은 우리 팀의 5장 카드 중 한 카드는 훤히 보고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팀에서 가장 어린 친구와 나는 15살 차이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현자 타임이 올 때마다, 고개를 흔들고 집중했다. 연습 시간을 정하고, 다 같이 게임을 하며 호흡을 맞춘다. 게임을 하고 한 명이 리플레이 화면을 공유하며 지난 게임을 다 같이 피드백한다. 애석하게도 피드백의 메인 타겟은 나다. 팀의 약점을 보완할수록 팀은 강해지니, 당연한 일이다. 피드백은 괴로운 것이었다. 이 젊은이들이 주는 당근과 채찍의 비율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사진출처: Bing Image Creator AI
새로운 세계에서 완전한 초보가 되어보는 것은 참으로 생경한 체험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고, 수많은 피드백은 나를 에워쌌다. 한정된 시간 내 결과물을 내어야 하는데, 좋은 결과는 나의 성장에 달려있었다. 경쟁에 열정적인 팀원일수록 내게 주어지는 피드백의 양은 많아졌고, 해낼수록 곧 더 어려운 미션이 뒤따랐다. 행동 하나하나에 숱한 피드백이 준 촘촘한 지도 탓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소심해졌다. 그게 다시 새로운 피드백을 부르고, 이내 허망한 공황 혹은 탈진이 이어진다. 고령자에게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내가 얼마나 비참해질지는 자명했다. 치열함이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피곤과 짜증이 겹쳐 분노로 연결되고, 이는 관계에 악영향을 준다.
지나치게 몰입했더니 시야가 좁아졌고, 그 안에서 서서히 무너져갔다.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팀을 본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번아웃 가깝게 도달한 사람도 보였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 팀의 삐걱거림을 인지한 리더 역시 의기소침해졌다. 사실 남 걱정할 처지도 아니었다. 너무 힘들어 나 역시도 포기하려고 했었으니까. 생각보다 이 게임은 굉장한 에너지 소모를 요구했다. 특히, 전투 중에 팀원들의 맵내 위치와 다음 전투에 대한 대응책을 생각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했다. 추가로 내가 받은 정보를 팀원들에게 말로 공유하면서, 전투를 수행하라니...
우승은 못 했지만, 우린 꽤 치열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내부적으론 평가했다. 개인적으로 이 리그에서 1승이 목표였는데, 그것도 이뤘다. 다시 하라고 하면 도망갈 준비부터 할 것이다. 아쉬운 지점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치열함이, 작은 승리가 주는 벅참이 달콤하여 몇 번이고 기억을 되새김질한다. 그랬다.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GG!
△사진출처: Bing Image Creator AI
백 진 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경북청년창업사관학교 교수